[베이서린]한밤중에 최애컾의 수가 무서운 꿈을 꿨다며 베개를 들고 공의 방에 들어왔을 때 공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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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그런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의 새 주군이 좋아하는 ‘서민식 표현’으로는 늦은 밤 방에 불을 끄고 누웠는데 커다란 나방이 들어와 방 안을 날아다니는 것 같다, 고 한다. 존재하거나 혹은 존재했던 어떤 곤충도 펜트하우스 최상층까지 날아들 수는 없으니 베이런으로써는 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묘한 비유였다. 그렇다고 그보다 더 적절한 비유를 알고 있냐면 그건 또 아니었지만. 어쨌든 뭐라 표현하든 크게 중요치는 않다. 베이런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린 제왕은 마치 인간처럼 잠을 자고 꿈을 꾸었다. 아주 먼 옛날, 그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의 꿈이다. 내용을 전부 ‘기억’하고 있는 베이런이 헤아리기에도 까마득한 그 꿈들은 아직 어린 왕에게 주어지기에 너무 가혹한 채무였다. 꿈의 주인은 사라졌으나 그 유산은 아직 건재하며, 거기에는 새 주인과 베이런의 연결고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해서 베이런이 깜깜한 방 안에서 파득이는 커다란 곤충의 날갯짓을 느끼는 날이면 어김없이 방 바깥에는 그 작은 머리에 꼭 맞춘 베개를 껴안고 어둠 속을 배회하는 작은 군주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또 어디인가. 딱 적당한 정도로 에어컨이 가동되는 거실 안을 살핀 베이런은 이윽고 마호가니 탁자 밑에 실타래처럼 늘어져있는 검은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행여나 그가 놀라지 않도록-서린은 이런 것을 좋아했다- 가구 위를 똑똑 두드린 후 탁자 채로 들어서 치우자 잔뜩 얼굴을 찌푸린 그의 왕이 투덜거리며 불만을 쏟아놓았다. “갈 데가 없었어..”
층당 400평이 넘는 76층짜리 펜트하우스를 두고, 아니 당장에라도 전화 한통으로 대기시킬 수 있는 전용기를 두고 할 말은 아니다. 뭐라 말을 하는 대신 베이런은 천천히 서린의 몸을 일으킨 뒤 두 팔로 등과 다리를 감싸들었다. 서린은 순순히 그가 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그대로 침실에 배달되어 엊그제 새로 숨을 채운 푹신한 침구에 파묻힌 서린이 다시 중얼거렸다. “갈 데가 없어..”
“어디로 가고 싶으십니까?”
“......우주?”
“어째섭니까?”
“아무 것도 안 들릴 거 같아서..”
잠시 말문이 막힌 베이런을 곁눈질한 서린이 다시 베개에 얼굴을 부볐다. 잠에 취해서 자꾸 말끝이 늘어진다. 서린은 이불에 더욱 깊게 몸을 파묻었다. 그리고 “집에 가고 싶어..”
그럭저럭 2년을 넘게 산 장소를 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베이런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의 집은 아직도 그 작은 동양의 나라에 있다. 그 곳에는 좁은 방에 둘러앉아 고생을 나누던 부친도 귀여운 여동생도 그의 소박한 삶을 쌓아올리기 위해 평생 전장을 떠돌던 형제도 있겠지. 다만 그의 왕은 돌아갈 수 없다.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다.
베이런은 얕게 한숨을 쉬고 넥타이를 풀었다. 구두를 벗고 침대 위로 올라가자 매트리스가 크게 출렁였다. 닫았던 눈꺼풀을 밀어올린 주군의 머리를 감싸며 베이런은 말했다. 우주도 집도 아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귀를 막아드리겠습니다.”
“언제까지?”
“잠드실 때까지요.”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듯 킥킥거리던 서린이 다시 눈을 감았다. 베이런이 손으로 귀를 덮자 곧 얼마 지나지 않아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다시 나방이 날갯짓을 시작한다. 베이런은 손바닥을 살짝 들고 속삭였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나의 주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