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몇번이나 되뇌어도 아침이 찾아오면 오늘도 끝나지 않았다는 걸 선재는 깨어나자마자 알아차리겠지. 그러면 선재는 밤새 숨을 잊었던 사람처럼 한숨을 길게 내쉬고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시간보다 약간 이르게 화양서로 가면 팀원들이 있고 그 중에서 광호는 누구보다도 먼저 인사로 왔냐 김선재? 함. 오늘은 또 무슨 일이길래 인상을 쓰고 왔냐는 타박을 들으면서 선재는 생각함. 뭐 하나 말하기 전에 표정으로 내 기분을 아는 광호 니가 왜 아직도 내 마음을 모르는 걸까.
생각해보면 광호는 짝사랑 상대로 최악이 아닐까 싶다. 눈치라곤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 주제에 말투나 행동도 거칠고. 하지만 선재에겐 항상 신경썼지. 선재 어머니 사건을 알기 전에도 광호는 선재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고 싶어했고 참견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선재가 누구인지 알게 된 후에는 다정했다. 마치 그 옛날 엄마를 갓 잃은 어린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그건 아마도 동정과 미안함이었을 거다. 그러니까 이 사랑의 책임은 언 마음에 붓는 따뜻한 열에 취해 그게 동정인지 애정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삼켜버린 선재 자신에게 있었다.
황량하고 차갑던 마음 속에서 간신히 피어난 불씨는 광호의 선재야 부르는 목소리나 다정하게 쳐다보는 눈빛 등을 두드리는 따뜻한 손바닥의 온기 등을 부지런히 먹고 자랐다. 그간 부지런히 장작을 넣어준 너에게도 책임은 있어. 제 속도 모르고 낄낄대며 문자장난 따윌 보내는 광호를 볼 때마다 그 멱살을 쥐어잡고 그렇게 따지고 싶은 것을 선재가 참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참다참다 선재가 광호 가는날 광호 멱살잡고 고백했음 좋겠다 광호 : 어버버
그리고 안볼 줄 알았는데 사건 또 터지면 광호 다시 터널 건너옴
"됐어 그냥 장난친거야."
"장난 아니었잖아."
선재가 놀라서 쳐다보면 광호는 씩 웃겠지.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니가 날 얼마나 모자르게 봤는지 알만하다 임마. 하여간 싸가지없는 놈 이거.
선재 민망하고 당황스러워서 획 돌아서는데 거기에 대고 광호가 선재야. 선재야 하고 불러주면 좋겠다. 그땐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따뜻하게 손 잡아주는데 선재는 눈물날 거 같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이게 꿈이든 자기 상상이든 지금 이순간은 정말 궁금하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음 좋겠다. 그날 밤은 광호가 선재 집까지 따라와서 선재는 쭉 붕뜬 기분으로 잠들때까지 광호 보면서 잠들었는데 광호 떠나고 오랜만에 푹 잔 선재가 지난 밤 생각하며 기분좋게 일어난 옆자리에 광호 누워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