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호선재] 아쉬워서 그런다 아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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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선재 이 대사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넘나 찌통인 것.. 부모님이고 같은 팀 동료고 뭐고 다 필요없고 오직 범인 잡는데만 집착해왔던 선재가 이런 말을 한다는게 진짜 너무.. 벨 필터링 빼고 봐도 너무 좋고 가슴아프고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선재의 변화를 그동안 선재 곁에서 누구보다도 가깝게 지냈던 광호는 더 분명하게 느끼겠지. 사실 광호한테 선재 첫인상은 더도 덜도 말고 딱 기도원에서 탈출한 미친놈이었고 그 다음에는 후드려패서라도 정신머리 교정시키고 싶은 싸가지없는 새끼였는데 점점 선재 과거 알게 되고 사정 알게 되니까 안된 놈 불쌍한 놈으로 바뀌었을 듯.
맨 처음 비오는 밤 선재의 과거를 알게 되었을 때 답지도 않게 범인에 이입해서 자기 심정 털어놓는 선재의 어조는 담담하려고 했지만 어둠 속에서 그가 맺고 끊는 호흡이 여실하게 떨려서 광호는 선재가 스스로 자기 속마음을 꺼내놓는 상황을 어색하고 거북살스럽게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음. 아. 얘는 지금까지 누구한테도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구나. 누구와도 나눈 적이 없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광호는 선재가 한없이 가엾고 애잔해짐.
광호도 지금까지 굴곡 많은 삶을 살았지만 광호 곁엔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 밥부터 선자리까지 챙겨주는 반장님이 있었고 한솥밥 먹고 한 지붕 아래 자던 화양서 팀원들도 있었고 광호 인생에 찾아든 따사론 햇살같은 여자 연숙이도 있었음. 근데 김선재 얜 혼자야. 굳이 성식이 말을 듣지 않아도 2016년 화양서 사람들이랑은 이름만 팀원이지 거의 객식구 수준이고 깊이 마음을 나누는 사람도 없어보임. 그나마 목교수랑 좀 친하게 교류한다 싶었는데 목교수도 선재의 사정을 제대로 몰랐던 걸로 봐서 완전히 마음을 터놓고 의지하는 상대는 아님.
광호는 처음에 화가 남. 김선재 대체 네가 뭐가 모자라서. 가족도 있고 동료들도 있고 다 있는데 대체 잘난 뭐가 있어서 그런 식으로 사람 밀어내고 지 혼자 사는 세상처럼 마음 문 닫고 사는지. 광호 생각으론 선재가 손만 뻗으면 화양서 사람들이랑도 가족이랑도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거든. 그러면서도 광호는 자기 어릴 적도 떠올린다. 거친 것만 보고 살면서 스스로도 거칠어졌던, 그런 것들밖에 모르던 자기 과거.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자기도 그런 식으로 살다가 길거리에서 죽었겠지. 사방에 내 편은 하나도 없고 온 세상이 적의로 가득찬 것만 같던 시절. 사실 광호의 과거에 비해서 선재는 상당히 형편이 좋은 입장이지만 여튼 그런 심정이, 그런 시절이 존재한다는 걸 아는 광호 입장에선 선재에게 무조건 화만 낼 순 없었음. 그래서. 선재가 혼자 자기 사정 자기 상처 끌어안고 삽질하면 뭐 하나 더 챙기고 시덥잖은 말 한마디라도 더 건네려고 기웃거렸음.
선재가 30년 전에 놓친 범인의 피해자라는 걸 알게 되고 부터 그 마음은 더 커짐. 선재가 헤매고 있는 게 그 나름대로의 지옥이라면 거기에 그를 던져넣은 책임의 일부는 자신에게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었음. 그 당시 사건의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광호 마음을 찌르는 가시같은 것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김선재는 좀 더 굵고 날카로운 가시였음. 선재가 흔들리거나 위태로우면 광호 가슴 한구석도 뜨끔거리고 쓰렸으니까.
그랬던 선재가 비오던 그날 밤 이후 묻는 말에 조금씩 대꾸도 하고 툭툭 던지는 말일 지언정 먼저 말도 걸고 하니까 광호는 신이 났을 듯. 이런 걸 보상이라 하긴 뭐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마음을 여는 선재를 보면 자기가 뭐라도 해줄 수 있는 게 있는 것 같아서. 그 와중에 그깟 도와줄게 몇마디 이야기 했다고 이렇게 자기한테 의지하는 걸 보면 선재도 참 외로운 놈이었구나 싶어서 또 짠하고.
언손을 불어 녹여주는 것처럼 온기를 대주면 금세 녹은 눈가를 하고 쳐다보는게 어렸을 적 제 아버지한테 안겨서 경찰서 드나들었던 그 때의 아이랑 별 다를 것이 없는 것 같아 가슴이 시렸음. 사실 선재가 그때 그 아이였다고 해도 이미 다 컸고 누가 봐도 체격 좋고 피지컬 짱짱인 터라 광호가 자기 몸까지 내던져가면서 구할 필요까진 없었는데. 이미 광호에게 선재는 과거 해결하지 못한 사건의 피해자나 같은 서 동료를 넘어서서 자기가 좀 더 챙기고 보듬어야 할 막내동생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음.
그리고 광호가 몰랐다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선재가 까칠하게 굴긴 하지만 자기 바운더리 안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누구보다도 마음을 깊이 쓴다는 건데 광호 정체 밝혀지기 직전 날카롭게 반응하던 것이나 그 다음 정체 밝혀지자 눈에 띄게 안심하고 마음 터놓는 모습이 오히려 선재가 광호에게 그만큼 의지하고 있었고 이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라서.
광호는 이런 선재가 굉장히 위태로운 면이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 속에서 자신을 믿고 의지한다는 걸 상당히 의미있게 받아들임. 어쩌다보니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선재랑 같은 사건을 쫓고 있긴 하지만 만약 목표가 서로 달랐어도 광호는 선재를 모른 척 하지 않고 힘닿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줬을 거임.
그러던 선재가 연숙이 죽었다는 걸 알고 집에 틀어박힌 자기를 집까지 데리러 와서 같이 사건 해결하자 그래서 너 돌아가 말하는게 얼마나 고맙고 애잔했을까. 그래 내가 그렇게 돌아가면 너는? 나밖에 맘 터놓을 곳 없는 너는 어쩌냐. 광호는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을 깨닫고 깜짝 놀람. 이제껏 연숙이와 연호가 있는 과거로 돌아가자는 생각만 있었지 이 시간대엔 미련 하나 없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언제부터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걸까. 광호의 이건 연숙이를 향한 사랑과도 연호를 향한 가여움과 애틋함과도 다른 종류의 감정이라 광호는 그 후로부터 가끔 가만히 선재를 들여다보게 됨. 이게 대체 뭘까 선재야. 대체 뭐길래 이런걸까.
그래서 선재가 아쉽다고 말했을 때 입을 다문 건 나도 그렇다고 대답해버릴 거 같아서였으면. 단순히 아쉬움을 넘어서서 이건 미련이었으면. 이대로 과거로 돌아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아마도 다시 만날 선재는 지금의 상처 받고 마음 문 닫은 선재가 아니라 다른 선재겠지만 지금 자기 옆자리에 앉아 너 가면 아쉬워서 어떡할까 말을 삼키는 선재는 이대로도 너무 소중해서. 남겨놓으면 남겨놓은 그대로 오도카니 이쪽 보며 놓여있을 마음 속 가시같아서 광호는 끝끝내 내가 간다고 서운해서 울지나 말라던지 이제는 싸가지없게 굴지 말라던지 하는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던졌을 너스레 농담도 던지지 못하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던 순간에. 피차 줄어드는 시간만 하릴없이 세고 있던 그날 밤 차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