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썰

[화최] 관계 마싯따

NO. 2020. 2. 6. 01:55

썰체 주의

 

 화최 관계의 마싯는 점은 그 전까지 살았던 둘의 삶을 빼앗아갔고 그 앞의 인생조차 송두리째 바꿔버린 끔찍한 사건에 서로 깊게 연관되어서 이제 와서 끝내거나 떨어질 수 없도록 얽혀버렸다는 점이다.. 처음에 화평은 윤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윤은 화평에게 원망과 미움을 느꼈겠지만 함께 박일도를 쫓으며 일련의 사건을 겪은 이후로 둘이 서로에게 느끼는 것은 동질감에 가까움. 

 특히 윤의 가족이 살해당한 것이나 박일도 잡는 일에 윤을 끌어들인 것이 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해 처음부터 부채감이 짙었던 화평과 달리 윤은 형을 그렇게 만들고 자기 가족을 끔찍하게 죽게 만든 화평을 오랜 세월동안 미워했지만 그조차도 애초에 화평의 잘못이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그 사건을 후회하고 괴로워한 건 화평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로는 이전처럼 화평을 원망하거나 미워할 수 없었음.

 가장 기억나는 것은 술에 진탕 취한 화평을 집에 데려다주던 날인데, 윤은 버려진 집도 아니고 멀쩡히 사람이 사는 집이 이다지도 황폐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음. 그래 가족 그렇게 된 이후로 밥을 잘 챙겨먹거나 잠을 잘 자거나 하는 올바른 생활과는 담 쌓은 자신의 집이라도 이 정도는 아닌데. 화평의 집은 하다못해 급하게 탈이 났을 때 챙겨먹을 약이나 생수 한 통조차도 없었음. 떨어져살지만 멀쩡히 반찬 챙겨다 보내주는 할아버지도 있으면서. 이건 단순히 자기 생활을 챙기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윤에게는 이게 화평이 자처하고 있는 어리석은 속죄임을 깨달음. 

 윤에게도 있었음. 부모님이 갑자기 미쳐버린 형에게 살해당하고 형조차 사라졌을 때. 가족들은 그렇게 끔찍한 꼴을 당했는데 자기만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살아간다는 걸 견딜 수 없던 시절이 있었음. 나 혼자 살아남아서 미안해요.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윤은 좁은 화장실에 틀어박혀 칼로 손목을 그었음. 

 그런 윤조차도 이제는 제대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살아가는데. 같은 시간을 보낸 화평은 아직도 그 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칼로 손목을 긋는것과 같은 소모적인 삶을 계속하고 있음. 배고프면 배고픈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꾹 참고 버티며 밥 한 술, 약 한 알 입에 댈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을 화평을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뜨끈하게 쓰렸음. 그래서 최윤은 그날 밤 취해서 잠든 화평을 두고 집 앞 편의점에서 물 한 병과, 배고플 때 두고 먹을 수 있는 햇반이나 컵라면 등을 잔뜩 사왔음. 

 잠에서 깨어난 화평이 눈을 떴을 때 곧바로 볼 수 있도록, 이부자리 옆에 늘어놓은 것은 실상 음식이나 물이 아니라 나도 그걸 이해하고, 더는 이런 속죄를 계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용서였음. 이날 이후 윤은 화평에게 남았던 일말의 원망과 앙금을 서서히 지워버렸음. 결국 우리는 피해자나 가해자가 아니라, 같은 비극에 휘말려 희생된 희생자들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