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괜찮아요.”
“어허, 그냥 누워있어.”
“진짜 괜찮은데...”
자꾸만 일어나려고 하는 후루야의 이마에 방금 식힌 물수건을 찰싹 소리 나게 얹으며 미유키는 혀를 쯧쯧 찼다. 저녁 연습 내내 얼굴빛이 영 안 좋아보이던 게 단순히 기상 악화로 그라운드 대신 선택한 실내체육관의 누리끼리한 조명 탓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것이지. 말은커녕 구위도 컨트롤도 평소대로라 줄곧 공을 받았던 미유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밝은 데로 나왔을 때는 이미 얼굴 뿐 아니라 온 몸이 불덩이여서 소란을 피우는 1학년 꼬맹이들을 심부름 보내고 제 방에 눕힌 것이 방금 전이었다.
감독님 부르러 갔어, 라는 말에 후루야의 눈동자에 떠오른 것은 당혹감이었다. 분명 주말에 있을 연습시합에 나갈 수 없게 되는 게 아닌가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말 한 마디 제대로 하는 건 없지만 생각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건 좀 귀엽지 않나 하고 미유키는 대충 생각했다. 그보다 천둥번개 치는 날 열이 나다니 무슨 초등학교 저학년이냐.
분명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그 정도 수준이긴 한가. 아니 요즘 초등학생은 꽤 야무지니까 이 녀석보다 말 잘하는 아이도 분명 있을 걸. 초등학생 앞에서 쩔쩔매는 후루야.. 이어진 생각 끝에 미유키가 낄낄거리자 물수건 밑에서 후루야가 얼굴을 찌푸렸다. 놀림 받는 건 분명한데 이유를 몰라서 말을 못 거는 거지 지금. 어이구 귀여워. 미유키가 다시 웃음소리를 내니 후루야가 이번에는 분명하게 인상을 썼다.
“왜?”
“왜 웃어요..”
“그냥?”
“........”
뭘 캐내고 싶어도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더 파고들기 어렵다. 그걸 잘 아는 미유키는 더 말하는 대신 부루퉁해진 후루야의 이마에 손을 뻗었다. 방금 올린 물수건이 금방 미적지근해진 걸로 봐서 열이 꽤 높은 모양이다. 밖에 날씨가 좋지 않으니 병원에 가는 길도 쉽지 않을 거고 적당히 내려줬으면 좋겠는데. 물수건을 뒤집어 찬 부분이 이마에 잘 닿게 뒤적인 미유키는 그 옆에 늘어진 앞머리를 가볍게 헤집었다. 아프지 마라, 덩치만 큰 초등학생.
정면을 보고 누워있던 후루야가 미유키 쪽으로 몸을 돌린 건 그때였다. 반사적으로 물수건이 흘러내리지 않게 붙잡은 미유키는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걸 뭐라고 해야 할까. 뭐라 할 수 없는 예감에 말문이 막힌 틈을 타서, 후루야는 물수건을 잡고 있는 팔목을 잡아 서로 숨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까지 미유키를 끌어당겼다.
“어린애 아니에요.”
“어?”
“애 취급 하지 마요.”
“어.. 어??”
잘게 떨리던 손가락 끝이 팔목을 스치며 떨어져나감과 동시에 우르릉거리며 천둥이 울렸다. 이제 벽을 보고 돌아 누워버린 후배의 귀 끝이 열이 아닌 다른 것으로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눈부신 실금을 그이며 타오른 것이 저 밖의 대기인지 제 가슴인지 알아내기 위해 그날 밤 미유키는 필사적으로 심장박동을 고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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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유후루(을)를 위한 소재키워드 : 물수건 / 천둥번개 /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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