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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큐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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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언제부터 끝을 예감했던 걸까

 뉴트 떠나고 둘이 남은 토민호 보고 싶다... 헤븐에서 바다를 보면서 뉴트가 남긴 편지가 든 펜던트를 만지작거릴 때마다 토마스가 이제는 답할 이 없는 질문 두 가지를 떠올리면 좋겠다. 하나는 도대체 언제부터, 고 나머지 하나는 대체 왜 내게, 다.

 물론 낌새는 꽤 있었음. 민호를 구하러 갈 때 마치 그게 남은 마지막 사명인 것처럼 달려들던 모습이라던가. 항상 어른스럽다 못해 가끔은 시니컬하게까지 느껴지는 뉴트답지 않은 태도였음. 초조함을 이기지 못해 멱살을 쥔 채로 부들부들 떨리던 차가운 손의 감촉이 아직도 목 언저리에서 선명하게 느껴질 때가 토마스에겐 가끔 있었음. 그래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미로의 아이들에게 크랭크의 존재는 기억나지 않는 과거보다 선명했으니. 항상 거리에서 무너진 건물 틈에서 어두운 터널 속에서 도사리고 있다 뛰쳐나와 산 사람을 물어뜯는 모습들로 자신의 미래를 짐작했을 친구를 생각하면 토마스는 견딜 수 없이 가슴이 답답해졌음. 

 그리고. 다른 질문은 민호에 대한 것이었음. 토마스는 뉴트가 민호에게 느끼는 감정을 알고 있었음. 민호는 몰랐겠지만. 토마스도 그 비슷한 것을 갖고 있었으니까. 뉴트도 아마 그걸 알았을 것이라 생각함.

 토마스가 미로에 들어오기 전부터 뉴트와 민호는 함께 있었음. 거의 마지막에 합류한 토마스의 눈에도 둘 사이에 뭔가 다른 것이 있다는 게 보였음. 그건 온전한 우정도, 가족애도 사랑도 아니었고 사실은 그 모든 걸 합한 형태에 가까웠음. 부모, 형제와 친구, 애인. 이 모든 걸 잃어버린 미로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고 뉴트는 편리하게도 이 모든 존재를 압축해서 하나로 정했음. 민호.

처음 둘의 관계를 눈치챘을 때 토마스는 질투를 느꼈음. 결국 민호가 받아들인 것은 토마스 자신이지만, 그래도 둘이 오랜 시간을 공유했던 사실은 변하지 않음. 심지어 그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 과거를 제외하면 거의 평생이라고 할만함. 민호가 능숙한 눈짓으로 뉴트에게 할 말을 대신할 때나, 뉴트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민호와 거의 동일한 타이밍으로 숨을 죽이고 내쉴 때마다 토마스는 앞이 캄캄해졌음. 정작 민호는 그럴 때마다 토마스더러 뭘 그렇게 죽상을 하고 있냐며 핀잔을 놓긴 했지만. 그랬으면서. 서로에게 가족이고, 형제이고 친구였으면서. 모든 것이었으면서. 뉴트 넌 왜 민호가 아니라 내게 이 편지를 맡긴 걸까.

 먼 동이 터오르기 시작함. 토마스는 모래사장에 앉아 펜던트를 만지작거렸음. 저멀리서 뛰어오는 까만 점같은 게 보임. 아직은 까만 점일 뿐인데도 토마스는 그게 누구인지 한 눈에 알 수 있음. 민호. 토마스의 짐작대로 모래장 저 끝에서 가볍게 뛰어온 민호는 토마스 앞에 서서 숨을 골랐음. 이제는 러너 치프도 아니고, 더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민호는 미로 때와 동일하게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음. 마치 그 때로 돌아간 것처럼. 누구도 잃기 전처럼. 할 말을 잃고 올려다보는 토마스를, 민호는 잠깐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곧 흥미를 잃고 바다 쪽으로 걸어갔음.

뉴트는 자기 감정을 민호에게 이야기한 적 있을까. 토마스는 처음 고백했을 때 민호의 반응을 떠올렸음. 무뚝뚝한 표정이 녹은 듯 사라지고 말이 되지 않는 말 조각만 반복해서 내뱉던 순간. 민호의 반응을 보건데 뉴트는 단 한 번도, 민호에게 자기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을 거임. 말했다면 민호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을 리 없으니까. 그렇게 말 한 마디에도, 눈길 하나에도 금이 갈까 깨어질까 두려워 말을 아꼈던 소중하고 소중한 관계. 그 마지막 순간에, 뉴트는 민호에게 고맙다고 말했음. 고마워 민호, 기다릴게. 하고.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에도 뉴트는 말하지 않았음. 사실상 유언장에 가까운 몇 장의 편지에도 민호에 대한 이야기는 적혀있지 않았음. 둘을 잘 알던 이들은 이제 다 사라지고, 끝내 전해지지 못한 마음은 토마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함. 말해줘야 하는게 아닌가. 다른 사람은 아니라도 민호만은, 민호에게만은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망설이는 것은-

 해변 근처,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세운 비석 곁을 걷고 있던 민호의 모습이 사라졌다는 걸 눈치챈 건 그 순간이었음. 토마스는 테이저건이라도 맞은 것처럼 벌떡 일어섰음. 민호??!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 위로 토마스의 목소리가 부스러졌음. 민호!!! 끔찍한 파도소리. 설마. 앉아있던 모래 언덕에서 비석 근처로 몇 발자국 되지도 않는 거리를 구르다시피 달려가면서 토마스는 제 말의 뜻도 모르고 되뇌었음. 설마 그럴리가.

그때 목소리가 들렸음. 뭐하냐? 이따금 토마스가 한심한 짓을 할 때면 듣곤 하는 그 목소리였음.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민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토마스를 쳐다보고 있었음. 이제 완전히 맥이 풀려버린 토마스가 비틀거리며 가라앉자 천천히 물 밖으로 걸어나온 민호는 바닷물에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며 인상을 썼음. 어디 아프냐?

아니.. 토마스 자신이 듣기에도 대답이 썩 똑똑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다행인지 민호는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음. 물을 뚝뚝 흘리며 걸어나온 민호는 천천히 토마스 주위를 돌다가 토마스 뒤에 있는 비석으로 향했음. 민호의 시선이 돌에 새겨진 '뉴트'라는 글자를 훑었음. 토마스가 쳐다보자, 민호는 고개를 돌렸음.

 좀만 더 빨리 달릴걸. / ? / 백신만 제 때 가져갔더라면.. 토마스는 민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깨달았음. 토마스는 고개를 저었음. 위키드에서 민호를 구해 나올 때부터 이미 뉴트의 상태는 심각했음. 편지를 쓴 건 민호를 구하러 들어가기도 전이었을 거고. 그 때부터 이미 뉴트는 끝을 생각하고 있었을 터임. 부탁한다고 했었는데. 덧붙이는 말은 바닷바람에 부서지는 포말처럼 가늘었음.

말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토마스는 펜던트를 꽉 쥐었음. 만약 그런 자격이라는 게 있다면, 누구보다도 뉴트의 감정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건 민호일 것이다. 지금도 망설이며 입을 떼지 못하는 토마스 자신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단 한 명, 모든 존재. 서로가 서로로 유일했던 소중한 관계. 마지막에도 부서질까 두려워 안녕 대신에,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감정 대신에 이제는 오지 않을 다음을 말하던...

이제는 아예 눈물이 터지기 시작하는 것을 민호는 퍽 당황한 얼굴로 바라본다. 배의 상처가 도지기라도 한 것 아니냐며 냉큼 옆구리로 달려가 부축을 시작하는 민호를, 토마스는 흐려지는 시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똑바로 눈을 뜨고 쳐다본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이 대신 민호를 보아도, 말할 수 없던 것을 대신 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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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신이 하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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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와줄게. 방법이 있어. 그때 당신이 버릇처럼 되풀이하던 말.

신을 믿고 그의 인도하심을 믿는 것이 사제라면서. 항상 왜 넌 길을 잃은 미아처럼 보일까.

 아근데 재밌는 건 화평은 진짜 뭘 믿거나 하는게 아니라 그냥 박일도 잡아서 원수 갚고 싶어서 걍 뭐든지 해본다 <--- 는 느낌이 든다는 거임 세습무 집안 출신에 박수무당이랑 형동생하고 지내면서 유사시엔 성당에도 전화해서 구마사제도 부르고 칼 들고 국회의원 찾아간다는 점이.. 최윤이 갈 길을 모르고 어찌 할 길이 없어 헤맨다면 화평은 할 일 너무 많고 갈 길 너무 많아서 정신없는 느낌이... 막상 화평도 뭘 어떻게 하면 해결된다! 는 확신은 없지만 길 잃은 얼굴로 자기 보는 윤 앞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고, 해결방법 있다고 자기가 안다고 말해버리는 모먼트 좋아하는 것

 

최윤 별명 종이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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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진짜 최윤 코피 쏟는거 피 토하는거 넘 좋은 거 같아

 최윤 별명이 종이인형이라던데ㅋㅋㅋㅋㅋㅋㅋ 툭하면 코피 쏟고 툭하면 어지러워지는 최윤 보고 싶다. 맨 처음 최윤 코피 쏟는 거 봤을 때 화평 길영이 뭐야 무슨 일이야 구마자 있어?? 하고 호들갑 떨다가 최윤이 넘 자주 그러니까 이제 익숙해져서 휴지 대주고 목 뒤 주물러주고 그러는 거.

 저번에 보니까 최윤 코피나니까 고개 뒤로 젖히던데 당황해서 그랬는지.. 여튼 최윤이 코에 손 대고 고개 뒤로 하려고 하면 길영이 윤 등짝 찰싹 치면서 고개 젖히지 말라고 그러고 화평이 얼른 휴지 가져와서 코에 대주고 콧등 주물러주면 좋겠다. 윤은 그 모든 과정을 눈 꿈뻑꿈뻑거리면서 받고 있고 그러다 계속 코피 안 멈추면 이제 어지러워질 껀데 그거에도 익숙해져서 현기증 찾아오기 전에 윤이 팔 끌어다 자리에 앉히는 길영 화평... 코피 대충 멈춘 다음엔 어지러워서 눈 꿈뻑하고 있는 윤 보면서 안되겠다 몸보신 좀 시켜야겠다구 셋이 소고기나 먹으러 가면 좋겠다..

 귓가에 어허, 하고 찰싹 등짝을 때리던 길영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최윤은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고개를 잡아주던 길영도 휴지를 대주던 화평도 모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쓰러진 친구들을 등진 채로 윤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 손등으로 흘러내리는 피를 문질러 닦았다. 하얀 손등에 붉게 피얼룩이 졌지만 윤은 물러서지도 도망치지도 심지어는 떨지도 않았다. 끔찍한 저주의 말을 쏟아내며 달려드는 악마를 친구들에게서 갈라놓는 형태로 버티고 선 윤이 다시금 기도문을 외웠다. 끈질겼던 악마가 마침내 지옥으로 사라지고, 코피를 뚝뚝 흘리며 윤은 바닥에 쓰러진 길영과 화평의 몸을 흔들었다. 깨어난 그들이 최윤 또 코피난다며 호들갑을 떨며 휴지를 찾아 헤맬 때까지.

 

엔딩 후 화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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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이후 만신창이된 화최 사랑했으면 좋겠다

 1년이 지났어도 화평이 동해 바다 뛰어들기 전 제 손으로 찌른 상처는 꽤 깊었어서 날 궂거나 심하게 움직일 때마다 뜨끔거리고 쑤셨으면 좋겠다. 오른쪽 눈이 이미 안보이게 된 건 말할 것도 없고. 윤도 두 번째 예언은 이미 겪었고 거의 세 번째 예언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온 몸이라 몸에 상처는 없어도 잔병치레가 늘고 몸이 차서 툭 하면 오한 느끼는게 일상이었으면. 둘 다 자기나 상대 몸 상태 느낄 때마다 안타깝긴 해도 그 박일도 상대로 이만한 상처로 끝났고 셋 다 살아남았으면 그래도 괜찮은 결과지 생각할 듯함...

 이제 곧 봄인데. 수단 위에 두터운 겉옷을 몇 겹이나 겹쳐입고도 윤은 손으로 옷깃을 꽉 쥔 채 덜덜 떨면서 걸어왔음. 윤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화평은 재빨리 가방과 겉옷을 받아들었음. 잠깐 스친 마른 손이 아예 냉기를 발하는 것처럼 차가워서 화평은 저도 모르게 혀를 쯧 찼음. 불을 잔뜩 뗀 데다 두터운 이불까지 깔아놓은 아랫목에 윤을 밀어넣자 종잇장처럼 창백했던 얼굴에도 조금씩 홍조가 돌았음. 좀 있어 봐. 이불 속에 쏙 파묻힌 채 눈만 내놓은 윤이 눈을 꿈뻑거리는 동안 화평은 점집 손님이 주고 간 햇대추차를 따끈하게 끓여왔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쟁반에 받쳐 내가자 윤의 눈이 단숨에 가늘어졌음.

 찬 손에 뜨거운 찻잔을 쥐기가 영 어려운지 윤은 쉽사리 잔에 손을 대지 못하고 망설였음. 그 모양이 퍽 우습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서 숨을 크게 들이 마신 화평은 순간 가슴 위쪽에 느껴지는 익숙한 환통에 얼굴을 찌푸렸음. 괜찮아요? 묻는 물음에 그때의 상처가 여즉 남아 이따금씩 걸리적거린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반사적으로 아물어가는 흉터 위에 얹은 화평의 손을 본 윤은 무슨 말을 듣기도 전에 그걸 알아챈 듯 했음.

 우리 둘 다 참, 말이 아니다 그렇지 신부님? 부러 장난스럽게 내놓은 말에 윤은 시선을 내려 찻잔을 바라보며 헛숨을 삼키는 것처럼 픽 웃었음. 그래 이만하면 됐지. 나도 최윤도 강형사도 살아있고. 그러면서도 화평은 여즉 차가 식기를 기다려 찻잔 언저리에 머무르는 저 창백한 손가락을 잡아 데워주고 싶었고, 저를 보는 윤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음.

 

새삼스러워 간지러웠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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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을 원망하면 어쩌려구요. 풋내가 날만큼 솔직한 물음이었다. 저를 보는 까만 시선이 너무 곧아서 화평은 가볍게 실소했다. 그걸 또 뭐라 오해했는지 윤이 얼굴을 찌푸리는 것을 다른 말로 얼버무리며 화평은 떠올렸다. 대대로 세습무가 계승되는 바닷가의 작고 좁은 마을. 어딜 가도 등 뒤로 말하지 않는 원망과 수군거림과 공포가 따라다니던 기억을. 신부님은 원망도 허락을 받고 하나. 그러면서 화평은 어떤 예감 같은 것을 느꼈다. 언젠간 저 이를 위해 목숨조차 버리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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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최 꽉 끌어안고 있는거 보고 싶다

 후에 길영에게서 전해들었다. 자신이 없었던 1년 간 윤에 대해서. 끝끝내 잡았던 손을 놓은 화평이 깊은 바다로 가라앉고 나서 윤은 깊은 물을 보면 저도 모르게 덜컥 숨을 멈춰버리는 고약한 병에 걸렸다고 했다. 머리로는 화평을 삼켰던 그 바다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윤은 조금이라도 깊은 강이나 시내를 볼 때, 심지어는 장마철 고인 물 웅덩이가 다리에 엉길 때나 물컵에 담긴 물이 찰랑이는 소리를 들을 적에도 하얗게 질렸다고 했다.

 달리 만날 수 있는 길이 없으니 아예 화평의 묘지처럼 생각했던 바다에 길영은 자주 찾아가 속에 담은 이야기를 털어놓곤 했다지만 그 아쉬운 성묘조차도 윤은 계양진으로 향하는 길목에서부터 새파랗게 질리는 통에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 때 딱 한 번, 밤새도록 이어져 날이 터올때까지 들었던 그 날 밤 그 파도소리가 항시 귓전에 울리는 듯 하다고, 유리컵 가득 채운 소주잔을 노려다보며 꼬부라지는 발음으로 고백하던 그 말이 길영은 어쩔 수 없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일 것이다.

 재회한 후에도 윤은 가끔 바다 꿈을 꿨다. 밤새 뒤척이면서도 꿈의 내용에 대해 도통 말하지 않는 윤이지만 이제 화평은 온갖 들을 수 없는 것을 듣는 터다. 잠든 윤의 곁에 누우면 어디선가 파도소리가 들렸다. 바다 저 먼 곳에서 일어난 파도가 육지를 만나 자잘하게 부서지는 익숙한 소리. 오래 듣지 않고도 화평은 이 소리가 오랫동안 들어왔던 제 고향 바다의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화평 자신은 이렇게 살아나 윤의 곁에 있고 더 이상 그 바다에 두고 온 것이란 아무 것도 없는데. 찾을 수 없는 뭔가를 찾아 매일 밤마다 바다 밑바닥을 헤매었을 윤이 안타깝고 가여워서 화평은 그때 스스로 놓았던 윤의 손을 가만히 쥐어잡았다.

 바닷가 마을 아이에게는 풍랑도 자장가소리라 그날도 초저녁부터 까무룩 잠든 윤의 곁에서 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화평도 잠깐 눈을 붙였을 때였다. 어느새 귀를 스치던 파도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저를 위에서 누르듯 팔로 버티어 선 검은 그림자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가만히 있어요. 방금 깬 듯 목 안쪽에서 긁히는 목소리였다. 화평은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윤은 천천히 몸을 숙이더니 화평의 위에 포개어져 두 팔을 등 뒤로 감았다. 맞닿은 가슴팍으로 방금 물에라도 들어갔다 나온 듯 요란하게 뛰는 심장소리가 겹쳤다. 아. 화평은 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못찾았구나.

 누운 몸을 반쯤 일으켜 가슴팍을 더 대주니 늘씬한 팔이 더욱 더 힘을 주어 몸통을 끌어안았다. 큰 키가 무색하게 몸을 잔뜩 말아 화평에게 매달리다시피 한 윤은 이제야 비로소 물 밖에 나왔다는 듯 깊이 숨을 내쉬었다. 마른 등을 쓸어주자 가볍게 기침한다. 춥기라도 한 듯 덜걱거리는 몸을 더 당겨 양팔로 그러안으면서 화평은 한참을 더디 나아가는 상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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