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체 주의

 

더보기

 화최 꽉 끌어안고 있는거 보고 싶다

 후에 길영에게서 전해들었다. 자신이 없었던 1년 간 윤에 대해서. 끝끝내 잡았던 손을 놓은 화평이 깊은 바다로 가라앉고 나서 윤은 깊은 물을 보면 저도 모르게 덜컥 숨을 멈춰버리는 고약한 병에 걸렸다고 했다. 머리로는 화평을 삼켰던 그 바다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윤은 조금이라도 깊은 강이나 시내를 볼 때, 심지어는 장마철 고인 물 웅덩이가 다리에 엉길 때나 물컵에 담긴 물이 찰랑이는 소리를 들을 적에도 하얗게 질렸다고 했다.

 달리 만날 수 있는 길이 없으니 아예 화평의 묘지처럼 생각했던 바다에 길영은 자주 찾아가 속에 담은 이야기를 털어놓곤 했다지만 그 아쉬운 성묘조차도 윤은 계양진으로 향하는 길목에서부터 새파랗게 질리는 통에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 때 딱 한 번, 밤새도록 이어져 날이 터올때까지 들었던 그 날 밤 그 파도소리가 항시 귓전에 울리는 듯 하다고, 유리컵 가득 채운 소주잔을 노려다보며 꼬부라지는 발음으로 고백하던 그 말이 길영은 어쩔 수 없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일 것이다.

 재회한 후에도 윤은 가끔 바다 꿈을 꿨다. 밤새 뒤척이면서도 꿈의 내용에 대해 도통 말하지 않는 윤이지만 이제 화평은 온갖 들을 수 없는 것을 듣는 터다. 잠든 윤의 곁에 누우면 어디선가 파도소리가 들렸다. 바다 저 먼 곳에서 일어난 파도가 육지를 만나 자잘하게 부서지는 익숙한 소리. 오래 듣지 않고도 화평은 이 소리가 오랫동안 들어왔던 제 고향 바다의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화평 자신은 이렇게 살아나 윤의 곁에 있고 더 이상 그 바다에 두고 온 것이란 아무 것도 없는데. 찾을 수 없는 뭔가를 찾아 매일 밤마다 바다 밑바닥을 헤매었을 윤이 안타깝고 가여워서 화평은 그때 스스로 놓았던 윤의 손을 가만히 쥐어잡았다.

 바닷가 마을 아이에게는 풍랑도 자장가소리라 그날도 초저녁부터 까무룩 잠든 윤의 곁에서 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화평도 잠깐 눈을 붙였을 때였다. 어느새 귀를 스치던 파도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저를 위에서 누르듯 팔로 버티어 선 검은 그림자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가만히 있어요. 방금 깬 듯 목 안쪽에서 긁히는 목소리였다. 화평은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윤은 천천히 몸을 숙이더니 화평의 위에 포개어져 두 팔을 등 뒤로 감았다. 맞닿은 가슴팍으로 방금 물에라도 들어갔다 나온 듯 요란하게 뛰는 심장소리가 겹쳤다. 아. 화평은 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못찾았구나.

 누운 몸을 반쯤 일으켜 가슴팍을 더 대주니 늘씬한 팔이 더욱 더 힘을 주어 몸통을 끌어안았다. 큰 키가 무색하게 몸을 잔뜩 말아 화평에게 매달리다시피 한 윤은 이제야 비로소 물 밖에 나왔다는 듯 깊이 숨을 내쉬었다. 마른 등을 쓸어주자 가볍게 기침한다. 춥기라도 한 듯 덜걱거리는 몸을 더 당겨 양팔로 그러안으면서 화평은 한참을 더디 나아가는 상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기타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민늍] 끝  (0) 2020.02.10
[화최] 조각글 모음  (0) 2020.02.06
[화최] 순간  (0) 2020.02.06
[화최] 화평이 강아지처럼 따르는 최윤 보고 싶다  (0) 2020.02.06
[화최] 신을 믿으시나요 윤화평 씨  (0) 2020.02.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