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소재 주의
‘...이번 시즌 우승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역시 주전투수인 사와무라 선수의...’
사와무라는 잠에서 깨어났다. 핸드폰에 맞춰둔 알람이 막 울리려던 찰나였다. 익숙한 트럼펫의 첫 소절을 잠시 듣던 사와무라는 알람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대로 닫지 않아 반쯤 열린 커튼 바깥으로 보이는 세상은 아직도 짙은 남색이었다. 써늘한 새벽 공기에 목 뒤며 팔뚝에 닭살이 일어났지만 방금까지 뒤집어썼던 이불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핸드폰 속에서 어제 밤 도착한 문자메시지들이 반짝이며 존재를 알렸다. 거의 대부분 우승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수많은 메일 사이에 가끔 보이는 익숙하고 그리운 이름들이 가슴 한 구석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어떤 것들은 사와무라의 삶에 깊게 남아 있곤 했다. 예를 들어 고단한 아침을 깨우는 알람은 3년 동안 지겹게 들었던 히팅 마치라던가-
다 마신 우유곽을 잘 접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사와무라는 후드를 뒤집어썼다.
안 그래도 경사가 있는 산에 미끄러운 이슬까지 더해지니 달리기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래도 질 수야 없지. 사와무라는 속도를 더 냈다. 같은 거리라면 평지보다 산길을 달리는 게 더 좋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잡은 것도 집 뒤에 산이 있어서였다. 고등학교 3년간은 정말 지겹도록 그라운드를 돌았다. 그 한걸음 한걸음이 지금의 자신을 쌓아올린 밑바탕이 되었다는 걸 알기에 불평할 생각은 없지만. 다만 굴곡도 없고 앞에 걸리는 것도 뒤따라오는 것도 없는 그라운드를 달리는 건 썩 재미없는 일이란 걸 알아버렸던 것이다.
폐가 터질 것 같다. 근육 안쪽이 불이 난 듯 당기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여기서 잠깐 멈출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질 수는 없다.
더 이상 뛸 수 없을 때가 되고서야 사와무라는 달리기를 멈췄다. 고개를 숙이자 얼굴에 맻혀 있던 땀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진다. 무릎을 짚고 간신히 숨을 골랐다. 아주 잠깐 동안이었는데. 그 사이에 등 뒤에서 바싹 따라오던 기척이 사와무라를 지나쳐서 저 앞으로 달려 나갔다.
후루야.
사고는 말 그대로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 일을 말하는 거였다. 사와무라는 그때 처음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2학년 겨울 합숙이 끝나고 주어진 일주일간의 방학이 끝나갈 무렵 급하게 걸려온 전화 속 목소리는 이상한 말을 하고 있었다. 팀원들끼리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가는 내내 사와무라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상한, 이상한 일이라고.
그 뒤의 일은 지금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기숙사에 남은 짐을 정리하기 위해 들어간 후루야의 방 벽에 걸려 있던 1이 붙은 유니폼. 아. 이걸 빼앗아오고 싶었다. 생각한 순간 울음이 터졌다. 그 녀석에게서 당당하게 가져오고 싶었는데. 끝끝내 넘겨받지 못했다. 후루야가 가지고 가버렸다. 아주 멀리로.
그 다음 해 여름 갑자원에 나갔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가 되었다. 처음 몇 년간은 좀처럼 성적이 좋지 않아 2군에 머물렀지만 4년째에 1군으로 승격, 지금은 엄연한 팀의 주전투수다.
삶은 계속 이어진다.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그 다음 밟아야할 레일이 계속해서 쌓이고, 야구를 하는 한 이 길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을 안다. 돌아보면 벌써 오래 전에 그 녀석은 가지 못했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도. 너는 왜.
지금도 내 앞을 달리고 있는 걸까.
딱 다섯 번, 사와무라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허리를 폈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폐가 한계까지 팽창하고 근육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긴장한다. 그런데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손가락 한 끝 차이. 안 돼. 얼마 안 남았어. 앞으로 조금만 더. 이를 악물지만 앞서 달리던 라이벌은 마침내 어디 따라와 보라는 듯 이쪽을 흘끗 보고는 동이 터오는 저 앞으로, 유유히 달려 나간다..
“젠장, 또 졌잖아..”
사와무라는 중얼거리며 햇빛에 뿌옇게 달아오르는 눈시울을 덮었다. 언제나 앞에서 달리던 얄미운 녀석. 어떤 힘든 것도 아픈 것도 없던 걸로 만들어버리곤 계속 달리게 했다. 저 멀리 아직 닿지 못하는 곳으로. 함께. 더 이상 너는 여기에 없는데도. 한숨 같은 웃음이 터졌다. 이런 게 라이벌일 거야. 그렇지, 후루야?
나는 아직도 너를 쫓고 있다.
***
사와후루를 위한 문장은 "내가 너를 찾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을 뿐 어딘가에 아직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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