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호는 외로움을 많이 탔음. 어렸을 때부터 광호의 마음 한 구석은 늘 써늘했고 찬바람이 불어닥치는 거 같았음. 주변을 둘러보면 자기처럼 외로운 사람 하나도 없고 다들 따뜻하고 행복해보여서, 그럴 때마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울분이 가슴에 치달았음.
아버지가 휘두르는 폭력도 그런 광호의 마음을 부추기는데 큰 몫을 했음. 해서 광호는 온갖 세상에 닥치는대로 주먹질하면서 거칠게 살았음. 폭력을 휘두르면 이 온데도 갈데도 없을 듯한 분노가 달래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폭력을 쓰면 쓸 수록 광호 주변에 사람들은 사라졌고 광호는 더 외로워졌음.
광호의 외로움을 달래준 건 어머니였음. 아버지와 다르게 약했지만 상냥했던 어머니는 죽고 난 다음에도 광호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음. 삼일 밤낮 범인을 쫓아서 기어코 잡아내고 유가족들에게 몇 마디 감사의 말을 들을 때면 광호는 항상 어머니를 떠올렸음.
외로움을 많이 타는 광호를 잘 알아서 86년의 반장님은 항상 광호를 더 챙겼음. 밥 먹이고 옷 사입히고 윗사람들한테 인사도 시키고. 가족을 모두 잃다시피한 광호가 같은 서 동료들에게 정붙이는 걸 안쓰럽게 지켜보던 반장님은 광호에게 잘 어울릴 만한 여자를 소개해줬음. 새 가족을 만들면 외롭지 않겠지. 강력반 반장의 사람보는 눈은 정확해서 둘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식을 올렸음. 행복했던 시절. 넓지도 않은 신혼집 안방에 연숙과 함께 누워있으면 광호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음.
선재는 외로움을 몰랐음.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선재가 가여웠던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만나고 선재에게 더욱 사랑과 관심을 기울였지만 그러지 않았더라도 선재는 괜찮았을 거임. 애초에 선재는 외로움을 잘 타지 않았음. 또래와 어울려다니기보단 혼자가 편했고 거기에 익숙했음.
동기들이 만드는 파벌과 계보도 관심없었음. 선재가 관심을 두는 건 오직 범인을 잡아 죗값을 치르게 하는 일 뿐. 그를 위해서 혼자 자료를 조사하는 것도 혼자 사건현장에 다니는 것도 혼자 밥을 먹고 혼자 휴일을 보내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았음. 선재에게 외로움이란 항상 저만치 멀리 있는 남의 것이어서 선재는 그걸 알 도리도 알려는 마음도 없었음.
그러다 선재는 광호를 만나서 처음으로 외로움이 무엇인지 알게 됨.
행복하고 따뜻하던 과거에서 밀려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래로 온 광호는 다시 또 사무치게 외로워졌음.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가족을 만나고 싶었음. 필사적으로 범인을 쫓으면서 드문드문 이어지는 과거와의 연결고리에 마음을 쏟았음. 그 중 하나가 선재였음.
과거 사건 피해자의 아들이자 파트너. 선재한테 공연히 밥 먹었냐 잘 잤냐 캐묻기도 하고 선재가 어디 갈라치면 곧장 따라와 조수석 차문을 열고 뭘 보고 있으면 끼어들어가서 스마트폰 모니터를 들여다봤음. 휴일에는 쓰잘데없는 문자 장난을 쳐서 불러내기도 했음. 그러고 나면 광호는 훨씬 외로움이 덜했음.
선재는 반대였음. 광호가 자꾸 자기한테 관심을 보이고 차에 같이 타고 자료를 같이 조사하며 휴일을 같이 보낼수록 선재는 더욱 더 외로워졌음. 더 이상 혼자 타는 차가 혼자 보는 자료가 혼자 보내는 휴일이 괜찮지가 않았음. 광호와 함께 있으면 외롭고, 광호랑 함께 있지 않으면 정말 사무치게 외로워졌음.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을 때 광호는 제 쪽으로 등을 지고 있는 선재의 허리를 끌어당겨 꼭 끌어안고 목덜미에 코를 대서 숨 한 껏 선재의 냄새를 맡으며 깊은 충족감에 빠져 잠들고, 광호가 잠들고 나면 선재는 몸을 돌려 광호를 꽉 끌어안으며 잠겨죽을 것 같은 외로움에 몸서리쳤음. 선재는 이런걸 정말 바라지 않았지만 이미 외로움을 알아버려서 다시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음.
광호가 과거로 아예 돌아가고 난 후, 선재는 먼 곳에 보이던 외로움이 제 맞은 편 자리에 다가와 앉는 것을 보았음. 그리곤 두 번 다시 떠나지 않을 것도. 선재는 평생을 함께 할 그것에 이름을 붙였음. 외로움을 가르쳐준 사람의 이름을.